Aggro-Swap
Youngjoo Jeon, Sookhyeung Yoo
June 6 - June 29, 2024
Catalogue
Youngjoo Jeon, Sookhyeung Yoo
June 6 - June 29, 2024
Catalogue
어그로-스왑
전영주, 유숙형
2024년 6월 6일 - 6월 29일
카탈로그
전영주, 유숙형
2024년 6월 6일 - 6월 29일
카탈로그
Youngjoo Jeon and Sookhyeung Yoo share a common working method. Instead of starting with a photographic image and painting it as it appears in the photograph, they capture the emotions and sensations behind it and bring them out on the screen. In the duo exhibition <Aggro-Swap>, the two artists select photographs and exchange them to paint a common motif. If one person chooses an image for an intentional or sensory reason, the other doesn't need to know why. The mystery doesn't have to be solved on the canvas, as long as you don't know why you're drawn to the image. In this process, which is the basis of their work, Youngjoo Jeon and Sookhyeung Yoo find the points in the image that they are drawn to and develop them into their own work. As a result, the exhibition <<Aggro-Swap>> presents paintings from different perspectives, rather than one resembling the other. When viewing the works side by side, you can recognize the differences in the points of attention, the impression of the brush strokes, and the way they understand and show their subjects. You'll see where the artist pays more attention, the way they use color, and the choices they make in terms of expression, as well as the way their eye is manipulated through cropping or focus.
Youngjoo Jeon's paintings capture a sense of tension, as if something is about to happen. In her works based on photographic images, the force majeure situations and environments that interest the artist are presented as the calm before the storm, before the hidden forces in ordinary scenes erupt. Sookhyeung Yoo's paintings, on the other hand, are vague and euphemistic, but they convey a great stress that cannot be escaped. This stress is not expressed dynamically or nervously on the canvas, but rather as emptiness and boredom. Sookhyeung's emptiness, unlike Youngjoo's tranquility, creates a low-saturated mood that suggests a subdued or deprived energy. On the other hand, the tension in Youngjoo Jeon's paintings is in some ways like a romantic beauty that shines just before it disappears. When both artists deal with images, they start from the same image, but the resulting works are presented differently. Looking at their works, we cannot say which one is closer to the original. This is because their gaze is directed to different places. Even when they look at the same image, they don't go to the same destination. On the contrary, they are spread out from one image like parallel worlds-not so much 'derivative' as scenes that are not bound/attributed to the time and space recorded by the image.
For the viewer, the fun of comparing the paintings without the original image begins with inferring the original through the two works, as well as seeing the differences in the artist's interests and the expression methods that develop those interests. On the other hand, the fun that comes from being in the position of two people working on an image comes from knowing their own tastes and expressions in the way they interpret it. Furthermore, it becomes a matter of coming back to yourself and knowing your own tastes and methods of expression. Seeing through two eyes is about getting to know not only the original image, but also each other's eyes. By comparing how they look at an image and how they translate it to the screen, Sookhyeung Yoo gets to know Sookhyeung Yoo's gaze and expression, and Youngjoo Jeon gets to know Yongjoo Jeon's gaze and expression. In addition, the gaze is not only directed toward the other person, but also toward oneself, so that Youngjoo Jeon learns about Youngjoo Jeon's gaze and Sookhyeung Yoo learns about Sookhyeung Yoo's gaze. Despite the fact that they are not working together, they have the same starting point-the same original image, and the same starting point of working on a conceptual painting based on the image-their gaze and working methods move forward without ever converging on the original image and a common working method. This evolution could lead to working with edited images rather than photographic images, or to choosing a larger screen to show more tension or emptiness, or to pursuing a more controlled materiality, or to accompanying it with a less controlled materiality. The choices are flexible and can be played out from one angle and one image. Perhaps nothing is more specific and flexible than the two artists' gaze as they conceptualize their photographic images. (by Konno Yuki)
이미지 하나에서 오는 것은 기록물에 담긴 각도나 시공간에 구속/귀속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찍었는지 알 수 있는 경우에 추억으로 빠지기도 하고, 누가 어디서 찍었는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이미지를 볼 때는 자유로운 상상으로 이끌 수도 있다. 사진이 매체나 도구로 이해되고, 이미지라는 말이 유연성을 갖게 된 오늘날, 한 이미지에 다양한 해석과 상상이 뒤따른다. 사람들이 이미지를 수용하는 태도는 제각각이다. 언론보도에서 진지하게 분석되고 주장을 전개하기도 하고,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짤방’처럼 소비되기도 하고, SNS상에서 아예 다른 사건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의 이미지에서 출발하여 또 다른 이미지가 시각적으로 나타날 때, 말에 의한 해석이나 상상과 달리 어떤 효과가 발생할까? 또 다른 이미지는 원본이 되는 이미지를 대신하는 대신, 대신의 대신이 된다. 이미지 그리기는 전영주와 유숙형의 작업에서 일종의 메타적인 시선이 된다. 한 장면을 똑같이 복사하는 기술적인 반영이 있다면, 대신의 대신은 이미지에 본 작가의 시선이 자유롭게 개입되는 것을 허용한다.
전영주와 유숙형의 작업 방식은 공통적이다. 사진 이미지에서 출발하여 이를 사진에 나온 그대로 그리는 대신, 이면에 숨어 있는 감정이나 감각을 포착하여 화면에 끄집어낸다. 이인전 <어그로-스왑>에서 두 작가는 사진을 고르고 이를 교환하여 공통의 모티프를 회화 작업으로 그려 본다. 한 사람이 이미지를 고를 때 의도적이거나 감각적인 이유가 따른다면, 나머지 한 사람은 이 이유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미지에 끌린 이유를 모르는 상태에서 수수께끼는 화면에서 반드시 해명될 필요가 없다. 작업의 밑바탕이 되는 이 과정에서 전영주와 유숙형은 본인이 끌린 지점을 이미지에서 찾아 작업으로 각각 발전시켜 나간다. 결과적으로 <<어그로-스왑>> 전시장에는 전영주와 유숙형의 작업하는 방식이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닮는 대신, 각각 다른 관점으로 풀어낸 회화 작업이 소개된다. 작업을 각각 놓고 볼 때 주목한 포인트, 붓 터치가 주는 인상, 그리고 대상을 이해하고 보여주는 표현 방법의 차이를 알아볼 수 있다. 어떤 부분에 작가가 더 주목했는지, 색채 사용을 비롯한 표현 방식, 크롭이나 포커스를 통해서 조정된 시선을 통해서 그려진 각자의 선택을 볼 수 있다.
전영주의 회화는 무슨 일이 곧 일어날 것만 같은 긴장감을 담는다. 작가가 관심을 보내는 불가항력의 상황이나 환경은 사진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작업에서 평범한 장면 속에 숨어 있는 힘이 분출되기 전, 폭풍전야처럼 고요하게 표현된다. 한편 유숙형의 회화는 애매하고 완곡하게 다가오지만,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스트레스를 담는다. 이 스트레스는 화면 안에서 역동적 혹은 신경질적으로 드러나는 대신 공허함과 지루함으로 표현된다. 유숙형의 공허함은 전영주의 고요함과 달리, 에너지가 가라앉은 또는 빼앗긴 분위기를 낮은 채도로 만든다. 한편 전영주의 화면 안에서 팽창된 긴장감은 어떤 면에서 사라지기 직전에 빛나는 낭만적인 아름다움을 보이기도 한다. 두 작가가 이미지를 다룰 때, 같은 이미지에서 출발하면서도 결과물인 작업은 다르게 선보여진다. 두 작가의 작업을 보고 우리는 어느 쪽이 원본에 가깝다고 따지지 못한다. 전영주와 유숙형의 시선은 각각 다른 곳을 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이미지를 본다고 해서 같은 목적지로 향하지도 않는다. 그와 달리, 오히려 평행 세계처럼 한 이미지에서 퍼져나간—‘파생’이라고 하기에는 훨씬 자유로운, 이미지가 기록한 시간과 공간에 구속/귀속되지 않는 장면으로 있게 된다.
관객 입장에서 원본 이미지가 없는 상태에서 그림을 각각 비교해 보는 재미, 그것은 두 작업을 통해서 원본을 유추하는 일은 물론, 작가가 가지고 있는 관심사와 그 관심사를 발전시키는 표현 방법의 차이를 각각 보는 일에서 시작한다. 한편 작업하는 두 사람의 입장에서 창출되는 재미, 그것은 한 이미지를 해석하는 방식에서 각자의 취향과 표현 방법을 아는 일에서 온다. 더 나아가,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내 취향과 표현 방법을 아는 일이 된다. 두 시선으로 본다는 것은 원본 이미지뿐만 아니라 서로의 시선을 알게 되는 일이다. 한 이미지를 어떤 시선으로 보고 어떻게 화면에 풀어냈는지 비교하면서, 전영주는 유숙형의 시선과 표현을, 유숙형은 전영주의 시선과 표현을 알게 된다. 그와 더불어, 시선은 다른 한 사람을 향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다. 그리하여 전영주는 전영주의 시선을, 유숙형은 유숙형의 시선을 알게 된다. 공동의 작업이 아닌, 그러면서도 출발점이 같은—같은 원본 이미지라는 출발이자, 이미지를 바탕으로 구상 회화 작업을 한다는 출발점—두 작가에게 시선과 작업 방식은 원본 이미지와 공통의 작업 방식에 수렴될 일 없이 나아간다. 이 나아감은 어디로 갈까? 사진 이미지가 아닌 편집된 이미지를 소재로 다루는 일로 이어질 수도 있고, 더 극대화된 긴장감이나 공허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큰 화면을 선택할 수도 있다. 혹은 통제되는 물성을 추구하거나 통제를 덜 받은 물성을 화면 안에 곁들일 수도 있다. 선택들은 한 각도와 한 이미지에서 유연하게 풀어낼 수 있다. 어쩌면 사진 이미지를 구상적으로 그리는 두 작가의 시선만큼 구체적이고 유연한 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글. 콘노 유키)